AI는 스스로 생각하는 인격체가 될 수 있을까?
AI의 발전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세상의 기대와 걱정이 가득하다.
변화에는 언제나 기회와 위기가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가 지적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에 수학자 앨런 튜링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가 뉴런의 작동 방식에 상관없이 뇌의 기능을 두고 지능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사람이 상대가 컴퓨터인지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지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철학자 존 설은 다음의 예를 들며 반대했다.
"중국어를 모르는 이가 중국어가 쓰인 카드를 받은 후 그에 상응하는 기호가 적힌 카드로 응답한다고 해서 중국어를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고성능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처음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은 처음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이 거짓이더라도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조지 버클리는 '세계 속의 모든 것은 오로지 사람의 정신 속에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위인이 실존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볼테르는 소설 캉디드를 통해 "추상적인 철학적 담론보단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과학의 성장으로 형이상학적 고민은 점점 주류에서 멀어진 듯하다.
결국 AI에 대한 의문도 우리가 직접 그것이 되어보지 않고서야 모를 일 아닐까?
다수의 인간은 상대가 무엇이냐 보단 그것이 주는 결과물과 효용을 더 중요시하는 존재가 아닐지...
씁쓸하지만 인간 속물론에 한표 던지며 '그놈'에게 대체되지 않기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속물이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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