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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잠시일 뿐 겨울이 다시 돌아왔다. 시련의 계절 겨울. 차 앞 유리엔 성에가 꼈고, 칼날 바람은 볼을 스친다. 여름이 끝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시련. 그리고 다시 오는 여름. 스피노자는 세상 만물이 모두 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아는 바가 없지만 과학이 빅뱅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그의 통찰은 참으로 놀랍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육'은 또 다른 존재의 일부가 된다. 내 삶은 그저 억만 겁의 윤회 중 찰나의 한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복잡하게 얽혀있던 마음도 한순간 풀린다. 삶이란 그런 것, 찰나에 엉켰다 풀려버리는 작은 매듭. 그러니 다시 꿈을 꾸자, 설레고, 기대하자 시련의 아픔은 잠시 밀쳐놓고 찰나의 기쁨을 만끽하자. 그래도 된다. 그저 잠시일 뿐이다. 2023. 11. 13.
부재에도 반짝이는 것들을 위하여 생명이 올라오는 늦은 봄에 하늘을 향해 뿜어져나오는 분수를 보다가 불현듯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 7년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평생 일만 아는 농촌의 아낙이었다.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진 뒤에도 치매로 기억이 가물거려도 한손에는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갔다. ​ 이제그만 쉬라는 어머니와 삼촌들의 만류에도 십자가라도 맨듯 고무신을 신고 처벅처벅 걸어 갔다. ​ 그렇게 일만 하던 할머니는 서있을 기력도 없을 때가 되어서야 호미를 내려놓고 요양원으로 갔다. ​ 그리고 3년 뒤, 생전 가장 긴 휴식을 마찬 할머니는 또다른 시작을 위해 세상을 떠났다. ​ 할머니가 떠나고 7년이 흐른 오늘 햇빛에 반짝이는 분수를 보며 할머니가 떠오른 이유는 분수가 너무 반짝였기 때문이다. ​ 크고 작은 이별 뒤에도 분수는 그저 물을 뿜으.. 2021.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