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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

부재에도 반짝이는 것들을 위하여

by dream_to_reality 2021. 5. 23.

생명이 올라오는 늦은 봄에

하늘을 향해 뿜어져나오는 분수를 보다가

불현듯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7년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평생 일만 아는 농촌의 아낙이었다.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진 뒤에도

치매로 기억이 가물거려도

한손에는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갔다.

이제그만 쉬라는 어머니와 삼촌들의 만류에도

십자가라도 맨듯

고무신을 신고 처벅처벅 걸어 갔다.

그렇게 일만 하던 할머니는

서있을 기력도 없을 때가 되어서야 호미를 내려놓고

요양원으로 갔다.

그리고 3년 뒤, 생전 가장 긴 휴식을 마찬 할머니는

또다른 시작을 위해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떠나고 7년이 흐른 오늘

햇빛에 반짝이는 분수를 보며 할머니가 떠오른 이유는

분수가 너무 반짝였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이별 뒤에도 분수는 그저 물을 뿜으며 있을 뿐이다.

아직 분수의 정점에 가보지 못한 나는 부서지는 물줄기의 아름다움만 본다.

그러다 외할머니의 부재와 그를 따라가고있는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낙하하는 분수물 그 어디쯤에 있을 어머니도 언젠가 바닦의 물들과 만나겠지.

그래도 분수는 자연법칙을 거스르며 물을 계속 쏘아 올릴 것이다.

야속한 마음이 들어 그냥 자리를 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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